"아, 로한 작가님 아니세요?"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 의외네요, 하고 카쿄인 노리아키는 살짝 높은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했다. 짧은 목례로 그 인사에 화답한 로한은 흘긋 그가 앉아있던 테이블을 살폈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와 함께 책이라. 무슨 책일까. 추리, 증거, 범인, 조사. 단어로 보아 추리물이로군. 짧은 초읽기를 끝낸 로한은 다시 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함께 앉아도 괜찮은지? 물론이라는 대답과 함께 읽었던 책을 다시 덮는다. 의자를 주욱 끌어 앉으며 흘긋 책의 표지를 살핀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 카페에서 자주 책을 읽으시나봅니다."
가지고 온 테이크아웃 커피를 내려놓으며 로한은 옅은 미소를 띄웠다. 카쿄인은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예의 그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쑥스럽다는 듯이 책을 만지작거린다. 붉은 머리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찰랑인다.
"아아... 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이 카페의 분위기도 좋아하고. 그리고..."
그리고? 로한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유심히 살폈다. 안경을 걸쳐놓은 귀가 살짝 붉어졌다. 흐응, 그렇군. 하며 그는 속으로 웃음지었다. 그 남자가 오는구나. 그 망할 녀석의 커다란 조카. 이름이 분명... 쿠죠 죠타로.
"사실, 오고 가면서 이 곳에서 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자주 봤거든요."
"그러고보니 로한 작가님은 죠스케군과 친하시죠? 저도 자주 뵌 것 같네요."
"..."
대체 얼마나 자주 본 거야. 젠장, 그 녀석이랑 친하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다니. 로한은 짧게 혀를 찼다. 이럴 목적으로 이 남자와 합석을 한 것이 아니잖아. 항상 매고 다니는 가방 위로 스케치북과 원고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로한은 입을 떼었다.
"그 녀석과는 만화 소재 수집 관련으로 인연이 있어서 말입니다. 안그래도 신작을 구상중에 있어요."
"신작이요? 그건 기대되는걸요!"
눈을 크게 뜨며 로한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카쿄인은 기대에 찬 표정이다. 처음 만났을 때에, 자신의 만화를 잘 읽고 있다며 보인 그 표정. 로한은 드리운 낚싯대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 속으로 짙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여기에서 서둘러버렸다간 놓쳐버릴지도 몰라.
"제 책의 팬에게 직접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면 저야말로 영광일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거짓말이다. 사실 로한은 독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수많은 팬레터를 들춰보지도 않았으니 아예 없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지. 그러나 그는 피드백이 전혀 필요 없을 만큼 자신의 작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카쿄인은 쑥스러움과 놀라움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눈을 내리 깔고 책 표지를 연신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저로 괜찮으시다면야."
좋아. 미끼를 물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느긋하게 가방의 지퍼를 늘씬한 손가락으로 내린다. 지이익, 하는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자연의 따스한 소리로 가득 찬 이 공간에 인위적이며 이질적인, 차가운 소리가 비집어 들어온다.
"아직 스케치 수준이지만 원고도 가지고 왔거든요. 죠스케도 조금 도와주기도 했고."
자신이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카쿄인은 더 안심한 기색을 비추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로한은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음미했다.
"자, 이겁니다. 주제는..."
카쿄인은 고개를 쭉 빼고 테이블 위에 놓인 원고지를 바라본다. 지금이야, 하고 자신에게 신호를 보낸다. 로한의 새하얀 코트 뒤에서 손이 뻗어 나오고는 원고지 위에 선을 그린다. 카쿄인의 보라색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진다. 로한은 재빨리 쓰러지려는 그를 헤븐즈 도어로 부축해 앉히며, 연신 속으로만 삼키던 웃음을 지어보였다.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가 아닌, 자신의 부리에 걸린 먹이를 바라보는 매와도 같은 포식자의 미소.
"죽음이지요."
로한은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흰색 바지의 먼지를 털어내고는 원고를 가방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카쿄인의 의자에 걸쳐 놓여있는 갈색 외투를 그의 어깨에 둘러주고는, 수많은 페이지로 가득한 그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죽음과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자... 죽음을 겪고도 살아 돌아온 자... 나는 당신을 찾고 있었어."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로한은 정신을 잃은 카쿄인의 얼굴에 바짝 다가가 부드럽게 펜을 들었다.
"죽음이라니, 얼마나 멋진 소재인가. 나는 항상 그런 소재를 찾아다녔지. 죽음을 겪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얼마 없어. 안타깝게도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는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카쿄인 노리아키..."
로한의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필기체가 찬찬히 카쿄인의 빈 페이지를 메워갔다.
[카쿄인 노리아키는 매일 오후 2시에 키시베 로한의 집에 찾아온 후 의식을 잃는다.]
"내 만화의 소재로 삼아주지."
로한은 키득키득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자신과 만났다는 것이 적힌 페이지를 문질러 지워버리고는 마음에 들어하는 귀걸이를 찰랑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떴다. 카쿄인이 눈을 뜬것은 그로부터 약 5분 뒤였다.
"...어라, 졸았나..."
카쿄인은 졸림으로 흐려진 눈동자를 몇번이고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테이블 위에 자신이 읽던 책과 이제는 다 식어버린 커피가 있다. 카쿄인은 눈가를 손등으로 꾹꾹 누르며 짧게 한숨을 쉬고는, 오늘은 반드시 일찍 자게 해달라고 해야지, 하고 소리내어 각오를 다졌다.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 의외네요, 하고 카쿄인 노리아키는 살짝 높은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했다. 짧은 목례로 그 인사에 화답한 로한은 흘긋 그가 앉아있던 테이블을 살폈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와 함께 책이라. 무슨 책일까. 추리, 증거, 범인, 조사. 단어로 보아 추리물이로군. 짧은 초읽기를 끝낸 로한은 다시 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함께 앉아도 괜찮은지? 물론이라는 대답과 함께 읽었던 책을 다시 덮는다. 의자를 주욱 끌어 앉으며 흘긋 책의 표지를 살핀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 카페에서 자주 책을 읽으시나봅니다."
가지고 온 테이크아웃 커피를 내려놓으며 로한은 옅은 미소를 띄웠다. 카쿄인은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예의 그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쑥스럽다는 듯이 책을 만지작거린다. 붉은 머리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찰랑인다.
"아아... 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이 카페의 분위기도 좋아하고. 그리고..."
그리고? 로한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유심히 살폈다. 안경을 걸쳐놓은 귀가 살짝 붉어졌다. 흐응, 그렇군. 하며 그는 속으로 웃음지었다. 그 남자가 오는구나. 그 망할 녀석의 커다란 조카. 이름이 분명... 쿠죠 죠타로.
"사실, 오고 가면서 이 곳에서 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자주 봤거든요."
"그러고보니 로한 작가님은 죠스케군과 친하시죠? 저도 자주 뵌 것 같네요."
"..."
대체 얼마나 자주 본 거야. 젠장, 그 녀석이랑 친하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다니. 로한은 짧게 혀를 찼다. 이럴 목적으로 이 남자와 합석을 한 것이 아니잖아. 항상 매고 다니는 가방 위로 스케치북과 원고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로한은 입을 떼었다.
"그 녀석과는 만화 소재 수집 관련으로 인연이 있어서 말입니다. 안그래도 신작을 구상중에 있어요."
"신작이요? 그건 기대되는걸요!"
눈을 크게 뜨며 로한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카쿄인은 기대에 찬 표정이다. 처음 만났을 때에, 자신의 만화를 잘 읽고 있다며 보인 그 표정. 로한은 드리운 낚싯대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 속으로 짙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여기에서 서둘러버렸다간 놓쳐버릴지도 몰라.
"제 책의 팬에게 직접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면 저야말로 영광일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거짓말이다. 사실 로한은 독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수많은 팬레터를 들춰보지도 않았으니 아예 없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지. 그러나 그는 피드백이 전혀 필요 없을 만큼 자신의 작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카쿄인은 쑥스러움과 놀라움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눈을 내리 깔고 책 표지를 연신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저로 괜찮으시다면야."
좋아. 미끼를 물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느긋하게 가방의 지퍼를 늘씬한 손가락으로 내린다. 지이익, 하는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자연의 따스한 소리로 가득 찬 이 공간에 인위적이며 이질적인, 차가운 소리가 비집어 들어온다.
"아직 스케치 수준이지만 원고도 가지고 왔거든요. 죠스케도 조금 도와주기도 했고."
자신이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카쿄인은 더 안심한 기색을 비추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로한은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음미했다.
"자, 이겁니다. 주제는..."
카쿄인은 고개를 쭉 빼고 테이블 위에 놓인 원고지를 바라본다. 지금이야, 하고 자신에게 신호를 보낸다. 로한의 새하얀 코트 뒤에서 손이 뻗어 나오고는 원고지 위에 선을 그린다. 카쿄인의 보라색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진다. 로한은 재빨리 쓰러지려는 그를 헤븐즈 도어로 부축해 앉히며, 연신 속으로만 삼키던 웃음을 지어보였다.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가 아닌, 자신의 부리에 걸린 먹이를 바라보는 매와도 같은 포식자의 미소.
"죽음이지요."
로한은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흰색 바지의 먼지를 털어내고는 원고를 가방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카쿄인의 의자에 걸쳐 놓여있는 갈색 외투를 그의 어깨에 둘러주고는, 수많은 페이지로 가득한 그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죽음과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자... 죽음을 겪고도 살아 돌아온 자... 나는 당신을 찾고 있었어."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로한은 정신을 잃은 카쿄인의 얼굴에 바짝 다가가 부드럽게 펜을 들었다.
"죽음이라니, 얼마나 멋진 소재인가. 나는 항상 그런 소재를 찾아다녔지. 죽음을 겪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얼마 없어. 안타깝게도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는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카쿄인 노리아키..."
로한의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필기체가 찬찬히 카쿄인의 빈 페이지를 메워갔다.
[카쿄인 노리아키는 매일 오후 2시에 키시베 로한의 집에 찾아온 후 의식을 잃는다.]
"내 만화의 소재로 삼아주지."
로한은 키득키득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자신과 만났다는 것이 적힌 페이지를 문질러 지워버리고는 마음에 들어하는 귀걸이를 찰랑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떴다. 카쿄인이 눈을 뜬것은 그로부터 약 5분 뒤였다.
"...어라, 졸았나..."
카쿄인은 졸림으로 흐려진 눈동자를 몇번이고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테이블 위에 자신이 읽던 책과 이제는 다 식어버린 커피가 있다. 카쿄인은 눈가를 손등으로 꾹꾹 누르며 짧게 한숨을 쉬고는, 오늘은 반드시 일찍 자게 해달라고 해야지, 하고 소리내어 각오를 다졌다.